제가 저런 글을 썼었다네요
대박
어떻게 저렇게 글을 썼을까
Q. 부르디외는 문화자본의 불평등한 재생산이 학교교육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며 학교교육을 비판했다.
우리나라 학교 현장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문화자본의 (불)평등한 상황에 대한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을 토대로 부르디외의 학교교육론에 대해 스스로의 입장(긍정이든 부정이든)을 논해 보세요.
부르디외는 학교교육은 문화적 불평등을 극복하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강화하고 이를 재생산 하는 역할은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부르디외의 학교 교육론에 찬성합니다. 첫 번째로 개개인은 각자의 경험과 그 생각, 결과, 환경이 다르기에 환경적 측면에서의 불평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불평등은 또 다른 불평등이 됩니다. 학교 내 인원이 한정된 프로그램이 있을 때, 성적이 좋은 순으로 정하거나 학업성적이 좋은 아이들 위주로 혜택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저같은 경우도 여름방학동안 소논문을 쓰는 프로젝트에 성적이 좋아서 활동 할 수 있었는데, 제 친구는 이를 부럽다고 생각했고, 저는 성적으로 나뉜 결과가 당연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살아온 기간동안 성적에 따라 기회가 더욱 부여되는건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회가 정한 ‘능력’이 뛰어난 아이들에게 혜택을 우선시하겠다는 건데, 이는 불평등 합리화이자 능력주의로 연관됩니다. 능력있는 자들만 대우를 받는다면 설사 그렇지 않은 자들은 대우받지 못하는게 당연할까요?
문화자본은 경제자본과도 연관됩니다. 경제자본이 많을수록, 부유할수록 범주화딘 아비투스와 질 좋은 객관적 문화자본(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고, 이는 또다시 제도화된 문화자본(학력, 자격증 등)으로도 이어집니다. 22년 서울대학교 신입생 40%의 가정소득이 우리나라 상위 10%에 해당하고, 하위 10%에 해당하는 신입생의 비율은 고작 2.4%에 미친다는 것을 보면 문화자본 또한 우리 사회의 학력 경쟁에 있어 중요하다는 것으로 비추어집니다. 결국 문화자본의 불평등이 경제자본의 불평등, 사회 불평등까지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러한 문화적 불평등은 학교 내에서 뿐만 아니라 외에서도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들어 방언, 억양, 사투리가 있습니다. 지금 발표를 하는 저도 표준어 화자가 아니라 경상도 사투리와 억양을 쓰는 사람인데요, 그래서 작년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서현씨는 경상도말을 쓰지만 경기도에 있는 학교를 다니니, 여기에서 서울말 배워 고향 친구들한테 자랑하면 좋겠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떠한 의도와 생각으로 그러한 말을 하였는지는 모르지만, 말한다는 행위에서 나타나는 아비투스 또한 계급적 성질을 가질 수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사례라 생각합니다.
앞서 저는 문화자본을 통한 학교 내, 학교 외 불평등, 그리고 사회 불평등까지 이야기하였습니다. 이러한 불평등한 상황이 없어지려면 교육은 어떻게 행동해야할까요? 이에 대한 대안을 저 자신이 찾기는 너무 힘들다고 생각됩니다. 예를 들어 부모의 기준을 세워 이에 부합하는 사람에게만 양육의 기회를 준다고 가정합시다. 기준을 충족하는 사람들이 양육을 했기에 아이들은 사회가 원하는 최소한의 아비타트를 만족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아이들 간 차이는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어떠한 상황이던간에, 완벽한 평등은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교육은 최소한 이 격차라도 줄여주는 정책 및 방안을 취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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